2019년 12월 27일 금요일
[19-03] 기독교 역사 속 술
저자 성기문
본서를 완독한 독자라면 저자의 의견에 몇 가지 점에서 동의할 것이다. 첫째로, 음주 문제는 오랜 기독교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유대교를 포함한 기독교의 기원, 수도원 운동, 개신교의 발흥과 발전, 심지어 부흥 운동과 기독교 선교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둘째로, 음주는 역사적으로 비본질적인 문제 (아디아포라)다. 셋째로, 음주의 문제는 중요한 기독교 신학들, 즉 창조신학, 그리스도론, 그리고 성찬 신학 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넷째로, 음주를 죄로 여긴 한국 교회의전통은 19세기와 20세기 초에 불어 닥쳤던 세계적인 금주 운동과 그 맥을 함께 한다는 점, 다섯째, 교회의 음주 문제는 신학적으로나 목회적인 측면에서 좀 더 심각하게 논의될 필요가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알코올 중독이 개인과 가정 그리고 사회에 초래하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효과들이 그것이다. 그러한 부정적인 경험들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술에 대한 논의 자체가 고통스러운 과거나 현재진행적인 경험들을 떠오리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경우에도 디오니소스(바쿠스)적 쾌락주의와 스토아적 금욕주의의 대립을 찾아 볼 수 있다.
루터의 맥주와 관련된 또 다른 에피소드는 다음과 같다. 초대 교부들처럼 종교개혁자들도 교회에서 술을 제거하려는 시도에 직면하였다는 것이다. 그러자 루터는 다음과 같이 응수 하였다고 한다.
악용되는 대상을 없애버리면 악습이 사라질 것으로 상상하지 마십시오. 남자들이 술과 여자를 잘못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술을 금지하고 여자를 없애야겠습니까?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이 지금까지 예배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들을 하늘에서 뽑아버리겠습니까? 그러한 성급함과 횡포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증거뿐이죠.....
포도주와 여인이 슬픔과 상심을 초래하고, 많은 사람을 바보로 만들고 광기를 낳는다고 해서, 우리가 포도주를 쏟아버리고 모든 여인을 죽여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금과 은, 돈과 재산이 사람들 가운데 더 많은 죄를 초래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전부를 내다 버려야 할까요? 우리가 우리의 가장 가까운 원수, 즉 우리에게 가장 해로운 자를 제거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자살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우리의 마음만큼 더 해로운 원수는 없으니까요.
루터의 권주가
Whoever drinks beer, he is quick to sleep;
whoever sleeps long, does not sin;
whoever does not sin, enters Heaven!
Thus, let us drink beer!
그러한 점에서 기독교인들의 죄개념은 추상적, 신학적 측면보다 일종의 행동 규범 측면의 죄 목록들을 강조한다.
금주는 특정한 상황들에서는 윤리적 반응일수 있으나, 성경이 그것을 명령하는 것이 아니므로, 교회는 그것을 명령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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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이 그리 깔끔하지 않아 문맥 파악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며 보았다. 내용은 재미있는 내용들 인데 문장 때문에 편안하게 읽히지는 않는다. 내용도 고증과 주석이 많아 아주 쉬운책은 아니지만 주석을 꼼꼼히 보지 않으면 조금은 쉽게 진도가 나간다.
책의 마지막 즈음에서 '이제 마무리일듯한데 아직도 20페이지 넘게 남았네' 하면서 책장을 넘기다 보니 저자의 감사의 글이 나오고 이어서 20페이지가 넘게 나오는 주석과 인용 목록들이 나오는 그런 분위기의 글이다. 글쓰신 분이 학문적으로 신학을 공부하시는 분인듯 하다.
저자는 "비교적 가벼운 책을 써서 기쁘다, 물론 독자들에게 무거운 책으로 다가가지 않으리라 장담하지 못한다" 라고 본인의 글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듯 하다.
문장을 읽기 쉽게만 손봐 주셔도 독자들은 많이 가볍게 느낄 수 있을듯하다.
술에 대한 재미있는 역사와 분류법, 술 만드는법 등의 내용들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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